
오늘은 기분 좋은 소식을 나누고자 합니다. IBK 기업은행에서 발행하는 시니어·은퇴 잡지에서 한 편의 글을 의뢰받았고, 이곳에 홍성남 작가님의 이야기를 소개하게 되었다는 반가운 소식입니다. 페스트북에는 이런 의뢰가 적지 않게 옵니다. (예시 클릭)
바로 『뜻밖에 찾아온 도시농부의 삶』으로 주간 베스트셀러에 오른 그분이죠. 이번 원고가 곧 잡지에 실릴 예정이라, 먼저 독자 여러분께 이 이야기의 일부를 특별히 전해드립니다.

“도시와 농촌, 두 개의 무대를 오가는 인생 2막”
홍성남 작가님은 안양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를 졸업한 뒤, 영어 강사로 여유 없는 도시 생활을 이어오다가 뜻밖의 기회로 강원도 농부가 되었습니다. 이 극적인 전환기가 담긴 『뜻밖에 찾아온 도시농부의 삶』은 발간 직후부터 꾸준히 베스트셀러 자리를 지키며 독자들에게 뜨거운 호응을 얻고 있습니다.
“일상이 답답해 가끔 다 버리고 튀고 싶었다.” “마지막 장을 덮고 나니 코끝에 흙냄새가 난다.”
독자들의 이런 후기는 단순한 농사 체험기가 아니라, 인생 2막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작가님이 건네는 따뜻한 위로와 실제적인 용기가 전해진 덕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인생은 끝날 때까지 ‘변수’의 연속일까?
홍성남 작가님은 오랜 세월 도시에서 살아온 ‘차도녀’ 이미지가 강했습니다. 그러나 강원도의 산과 논, 그리고 마을 사람들과 함께한 여러 시행착오를 겪으면서도, 그녀는 의외로 자기만의 길을 즐겁게 개척해 나갔습니다.
“처음 해보는 농사는 좌충우돌의 연속이었지만, 그 모든 과정이 오히려 인생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었다.”
작가님은 귀농을 통해 알게 된 ‘어제와 180도 달라진 일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면서, 마치 독자들도 그 흙 냄새 가득한 밭에 초대된 듯한 느낌을 선사합니다.
이 책은 도시 생활에서 한발짝 물러나 새로운 시작을 고민하는 분들, 특히 은퇴 후 어떻게 살아갈지 막막해하는 시니어 독자분들에게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킬 이야기입니다.

기업은행 시니어 잡지 기고, 페스트북이 함께합니다
홍성남 작가님의 이야기 덕분일까요? 이번에 기업은행에서 발행하는 잡지 측에서 은퇴·시니어 독자들을 위한 글을 함께 만들어보고 싶다는 제안이 왔습니다. 귀농 준비 과정, 자발적 은퇴나 직업 전환을 모색하는 현실적인 고민들을 짚어보면서, 『뜻밖에 찾아온 도시농부의 삶』 속 경험담을 현장감 있게 전할 예정입니다.
이처럼 작가님과 페스트북이 이어놓은 다리 위에서, 더 많은 분들이 인생 2막에 대한 힌트를 얻어 가실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감히 단정 지을 순 없지만, 누군가에게는 이 책 한 권이 평생 고민했던 ‘인생 후반부’ 설계의 결정적 실마리가 될지도 모르니까요.
“흙과 사람, 그리고 인생에 대하여”
홍성남 작가님은 인터뷰에서 “인생 1막은 외부가 요구하는 삶이었다면, 인생 2막은 오직 내가 원하는 삶”이라고 말했습니다. 어느 순간, 남들이 부러워할 법한 삶이 주어진다 해도, 진짜 자신이 원하는 삶이 아니라면 결국 회의감이 찾아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요.
특히 농촌에서는 실패해도 스스로 책임지면 되고, 잘못된 일이 있어도 함께 도와주는 사람들이 많아 매 순간 따뜻함을 느낀다고 합니다. 도시에서의 번잡함에 지친 분들에게는 이 이야기가 신선한 자극이 되어줄 것입니다.
시니어 독자와 함께 맞이할 새 출발
홍성남 작가님은 인터뷰에서 “인생 1막은 외부가 요구하는 삶이었다면, 인생 2막은 오직 내가 원하는 삶”이라고 말했습니다. 어느 순간, 남들이 부러워할 법한 삶이 주어진다 해도, 진짜 자신이 원하는 삶이 아니라면 결국 회의감이 찾아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요.
특히 농촌에서는 실패해도 스스로 책임지면 되고, 잘못된 일이 있어도 함께 도와주는 사람들이 많아 매 순간 따뜻함을 느낀다고 합니다. 도시에서의 번잡함에 지친 분들에게는 이 이야기가 신선한 자극이 되어줄 것입니다.
IBK ‘아름다운 은퇴’에 실린 글 (2025년 3월호)
몸을 쓰며, 글을 쓰며
지난여름 딸과 함께 연극 <햄릿>을 관람했다. 1막이 진행되는 동안 온몸이 뻐근하고 갑자기 스트레칭이 하고 싶어졌다. 딸은 허리를 접더니 머리카락과 발가락의 만남을 주선하기도 했다. 중간 휴식 중에는 여기저기서 “졸려 죽는 줄 알았다.”라는 소곤거림이 들려왔다. 2막에 접어들자 극의 분위기는 갑자기 변했다.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전개에 넋을 놓고 보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주요 등장인물들이 모두 죽어 나자빠져 있었다. 딸과 나는 확장된 동공과 딱 벌어진 입으로 서로를 바라보며 “2막이 진짜였어. 다 아는 줄거리를 생각할 틈을 안 준다! 이래서 명작은 시대를 초월하는구나.”라며 감탄했다.
나의 인생 1막도 지독하게 재미없었다. 나름 좋은 학교를 나왔지만 좋은 직장으로 연결되지는 않았다. 시인이 되기를 소망했지만, 곧 낙망하고 체념했다. 하늘이 시를 사모하는 마음만 주었을 뿐 무정하게도 재능은 주지 않았다는 걸 알아챘기 때문이다. 그래도 날마다 저널, 서평, 시평, 하다못해 일기라도 썼다. SNS에도 꾸준히 글을 올렸다. 글쓰기는 마음의 결을 고르고 에너지를 얻는 나만의 방식이었으므로 ‘좋아요’를 눌러주는 사람이 있건 없건 상관이 없었다. 영어 책을 편집하고, 영어 교재 원고를 쓰고, 영어 강사를 하면서 제법 돈을 벌기도 했지만, 자산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사업을 하는 남편이 꾸준히 가져가고, 내 이름으로 빚더미를 쌓고, 종국엔 폐업하기를 네 번이나 반복했기 때문이다. 다섯 번째 사업을 위태롭게 끌고 가던 남편이 대학생 딸에게까지 천만 원을 내놓으라고 패악을 부리던 날, 이 재미없는 1막을 끝내기로 작정했다. 머리를 쓰며 사는 게 지긋지긋했던 나는 40대부터 막연히 ‘몸 쓰는 삶’을 꿈꾸었다. 하지만 무엇을 어떻게 해서 2막을 시작하고 진행해 나갈 것인가.
2020년 여름, 딸과 함께 강원도로 왔지만 특별한 대책은 없었다. 일단 걸었다. 걷기는 무너진 건강과 바스러진 마음을 회복하는, 내가 생각해 낼 수 있는 가장 무난한 방법이었다. 새로운 환경에서 단지 걷기만 했을 뿐인데 뜻밖의 일이 연달아 일어났다. 이웃 마을을 걷다가 발견한 척추교정원에서 치료를 받으며 이웃이 생겼고, ‘모종 몇 주 꽂아놓을 땅뙈기’ 노래를 불렀더니 농사지을 땅이 생겼다. 농기구 하나, 농사 관련 지식 한 줄 없이 땅부터 얻어놓고 예쁜 옷과 장신구를 쇼핑하듯이 모종과 씨앗을 샀다. 이것저것 두서없이 심는 나를 두고 이웃 어르신은 “흙장난하는 거지 뭐.”라고 농담 같은 진담을 했다.
“아줌마, 비닐을 나풀거리게 두면 모종 잎에 상처가 나서 안 돼요. 흙으로 덮어서 눌러요.”
“서리태를 4월부터 심는 사람이 어딨어? 인터넷 찾아보면 6월 15일 이후에 심는 거라고 나오는데 그것도 안 찾아보고 무슨 농부라고.”
“서리태 앞에다 들깨를 심으려고요? 들깨 키가 더 큰데, 그러면 그늘이 져서 서리태가 자라지 못해요. 키를 봐가면서 심어야지.”
어르신들은 오며 가며 훈수를 두셨다. 때론 거칠고 가시처럼 콱 박히기도 했다. 심기만 하면 흙이 알아서 하는 줄 알았는데 농부로서 배워야 할 게 많았다. 전문가 농부인 마을 어르신들 마음을 얻는 일이 급선무였다. 경계를 허물고 나면 그분들은 지식을 나눠주고, 농기구를 빌려주고, 힘든 일도 거들어주는, 든든한 아군이 될 터였다. 하지만 “냉정하고 차가워 보여서 다 가가기 힘들다”는 첫인상 평을 자주 듣는 내가 어떻게 어르신들 눈에 들 수 있을까. 나는 큰 소리로 인사하고 턱 근육이 아프도록 활짝 웃었다. 귀 기울여 듣고 진심을 담아 맞장구쳤다. 반찬이나 간식 같은 뇌물도 수시로 상납했다. 다행히 이 작전은 짧은 시간에 효력을 발휘했다. 어르신들은 때마다 필요한 지식을 전수했고 농기구를 빌려주었고 힘이 필요한 일은 대신 해주기도 했다.
“호박 한두 덩이 정도는 따지 말고 늙혀요. 그게 초장에 힘 빼는 역할을 해요. 열리는 족족 따 먹으면 덩굴이 너무 기세를 떨쳐요. 그럼 영양분이 다 잎으로 가서 나중에 열매가 없어요.”
“고추에 지주대 세우고 바인더 둘러야 하는데, 아무것도 없죠? 내 거 하는 김에 같이 해줄게요.”
“우리 영감한테 애기 엄마 대파에 고자리파리 유충 죽이는 약 뿌려주라고 했어. 이제 괜찮을 거야.”
나는 가만히 있고 온 동네 사람들이 합심해서 내 농사를 지어주는 형국이었다. “비켜봐요. 이렇게 해야지.” 한쪽으로 쫓겨나서 지켜볼 때도 많았다. 그런데 ‘어깨너머로 보는 것’도 배우는 좋은 방법이었다. 뭐든 빨리 배우고 응용력도 좋아서 “나, 농사에 재능 있나 봐.” 절로 감탄이 나왔다. 친환경 소재로 농약 만드는 법, 방선균으로 건강한 토양 만드는 법 같은 유기농법을 배울 땐 양자 역학 원리라도 깨우친 것처럼 기뻤다.
육체노동은 내가 걱정한 부분이었다. 허약 체질에 허리도 안 좋아서 5분 이상 쪼그리고 앉아 있질 못하는데 ‘내’ 농사여서 그런지 아파도 견딜 만했다. 계속하다 보니 근육량이 늘어 일이 수월해졌다. 게다가 몸을 쓰면서 몸이 좋아졌다. 만성 피로와 위염, 불면증, 브레인 포그 같은 것이 없어졌고 하루 5,000kcal를 소모하는 고강도 노동을 해도, 다음 날 아픈 데 없이 가뿐하게 일어날 정도가 됐다. 심지어 몸 쓰는 일이 즐겁기까지 하니 이 무슨 조화 속인지 모르겠다.
정신 건강도 더불어 좋아졌다. 작두질을 하거나 김매고 있으면 마음에는 무념무상의 평화와 고요가 깃들었다. 살아 있는 생명을 돌보는 일은 늘 애틋해서 엔도르핀, 다이돌핀, 도파민, 옥토신이 수시로 퐁퐁 솟구쳤다. 감자 싹이 돌덩이 같은 땅을 들어 올리면 “아휴, 기특한 것!” 칭찬이 저절로 나온다. 호박 떡잎이 껍질을 모자처럼 쓰고 올라오는 건 또 얼마나 귀여운지 껴안고 볼을 마구 비벼주고 싶다. 완두콩은 쭉 뻗은 손으로 울타리 망을 꼭 움켜쥐는데 천상 우아하고 경쾌한 발레리나다. 모든 작물은 나름의 이유로 다 사랑스럽다. ‘이것만 더, 이것만 더.’ 하면서 아이들의 필요를 돌보다 보면 염소 꼬리처럼 짧은 해는 자취를 감춘 뒤다. 말간 달과 샛별의 비호를 받으며 농로 끝까지 따라오는 길고양이 칼코와 산책하듯 퇴근하는 저녁은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이다. 깜깜한 들길에서 마주치는 반딧불이의 군무는 행복 지수를 두 배로 올려준다. 작은 미물의 희미한 불빛이 마음에 난 생채기를 소독하고 지진 걸까.
상처가 아문 자리에는 ‘여유’라는 새살이 차올랐다. 농사짓는 일이 만족스러운 건 원래 사람이 살아온 방식으로 살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가만히 앉아서 머리를 쓰는 삶이 보편화된 것은 불과 백 년 남짓이다. 수천 년간 인간은 흙을 밟고, 살아 있는 식물과 동물을 돌보면서, 자연적인 환경에서 살았다. 이 세 요소야말로 건강한 삶의 핵심이다. 가끔 “이제 농사는 그만할 때도 되지 않았어? 배운 게 아깝다. 돌아와.”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제 겨우 사람답게 살고 있는데 어디로 돌아간단 말인가?
이 소중한 경험과 몽글몽글한 행복감을 영원히 박제해 두고 싶어서 ‘차도녀의 흙놀이’라는 블로그를 개설하고 밤에는 글을 썼다. 밭에서 일어난 일, 출근길에 만난 뭉게구름과 소박한 야생화의 아름다움, 농작물의 성장과 고전분투 등은 저절로 글이 되었다. 어쩌다 이 글들이 《뜻밖에 찾아온 도시농부의 삶》이라는 책으로 출판된 덕에, 시인은 되지 못했지만 ‘작가’라는 과분한 타이틀도 얻었다.
블로그에는 간략하게 자신을 소개하는 난이 있는데 ‘인생 2막’에 대한 방향과 원칙을 담은 문안을 만들고 싶었다. 좋아하고, 잘하고, 하고 싶은 일, 죽을 때까지 해야 할 일을 추려보니 결국 읽고 쓰고 걷고 농사짓는 일로 수렴했다. 그렇게 완성된 ‘읽고 쓰고 걷는 도시농부’라는 소개는 꽤 마음에 든다. 읽기와 쓰기는 머리를 쓰는 활동이고, 걷기와 농사짓기는 몸을 쓰는 활동이니 정말 균형 잡힌 ‘자기 사용법’ 아닌가. 완성하는 데 50년이 걸린 이 정체성과 지향성은 한동안 변함없을 것 같다.
첫해에 50여 평을 지으며 동네 어르신들한테서 지식과 기술을 전수(傳受)한 후 이듬해 300여 평을 얻어 완전히 독립했다. 밭고랑이 많아진 덕분에 새로운 작물을 키우는 즐거움이 생겼다. 처음 보는 모종이나 씨앗을 데려오면 무탈하게 잘 키우고 싶은 어미의 마음이 절로 생긴다. 그래서 최적의 재배 조건이나 자주 노출되는 병충해 등을 공부하는데 다행히 어렵지도, 지겹지도 않다. 좋아하는 사람을 알아가듯 작물을 알아가는 시간이 소중하다. 작물이 커가면서 손 가는 부분도 제각각이라 매너리즘에 빠질 겨를도 없다. 게다가 새 농작물에서 새로운 이야기의 타래가 풀려나온다. 그러니 농사와 글쓰기를 동시에 가능하게 해주는, 농부만큼 매력적인 직업이 또 있을까.
나는 현금 자산은커녕 연금이나 보험도 변변치 않아 은퇴 이후가 늘 두려웠다. 원점에서 다시 출발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무작정의 작정, 무계획의 계획으로 강원도에 오고 깨달았다. 길이 있어서 가는 게 아니라 가다 보면 길이 생긴다는 것을. 일을 정해놓고 가는 게 아니라 가면 일이 생긴다는 것을. 모든 조건이 완벽한 상태에서 2막을 시작할 수도 있지만, 시작하고 나면 조건이 점차 갖춰지기도 한다는 것을. 안정에 대한 열망을 버릴 때 도리어 안정이 생긴다는 것을. 경제적인 관점에서 보면 여전히 궁색하지만 내가 좋아하고 잘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다는 면에서 더할 나위 없이 풍요롭다. 게다가 나의 인생 2막은 연극 <햄릿>의 2막만큼이나 재미있고 역동적이다. 이만하면 ‘잘 살고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홍성남
서울대 출신의 영어 강사로 활동하다 뜻밖의 계기로 강원도에서 농부의 삶을 시작했다. 새롭게 깨달은 인생의 면모를 전하기 위해 《뜻밖에 찾아온 도시농부의 삶》 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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