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채영 에디터입니다.
오랜만에 에디터 레터에 글을 남기네요.
오늘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원고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해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페스트북에서 일하며 정말 다양한 원고들을 많이 접했어요. 에세이, 시, 소설, 자기계발서와 경영서까지. 모두 각각의 매력이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제가 가장 좋아하는 원고는 ‘시’ 예요.
딱딱한 점토 같은 시집
사실 시집은 자유도가 굉장히 낮은 원고예요.
짧은 행과 연들이 모여 이미 고유의 형태를 이루고 있거든요.
사실 줄글 형식의 원고들은 여백과 스타일을 조정하면서 다양한 변화를 줄 수 있어요.
반면, 시집은 마치 단단한 점토 같아요.
한 문장 한 문장이 정해진 자리를 지니고 있어서 쉽게 형태를 바꿀 수 없답니다.
신기하죠? 읽을 때는 마음을 누구보다 말랑하게 만들지만, 편집할 때는 가장 손대기 어려운 원고라니요.
편집자의 역할은 원고의 내용을 손대지 않으면서도, 그 책이 더 많은 독자들에게 닿을 수 있도록 모양을 만드는 일이에요.
그렇다면 시집에서는 어떤 걸 할 수 있을까요?
시와 산문, 그리고 영상까지—강사라 작가님의 시집
최근 『삶이 왜라고 물을 때 나는 시를 쓴다』 라는 시집을 출간하신 강사라 작가님의 원고를 맡았어요.
감성적인 표지와 차분하면서도 다양한 색감의 내지를 통해, 작가님의 원고를 120% 끌어내 드리고 싶었죠.
강사라 작가님의 시집은 조금 특별했어요.
단순히 시로만 구성된 책이 아니라, 시와 산문이 함께 담겨 있었거든요.
게다가 작가님이 시를 집필할 때 영감을 받았던 영상과 사진들도 원고에 포함되어 있었어요.

처음 원고를 받고 나서 편집부 모두가 고민에 빠졌어요.
이 특별한 원고를 어떻게 하면 가장 좋은 방식으로 담아낼 수 있을까?
반짝이는 보석으로 만들기
저희가 하는 일은 원석 같은 원고를 박박 닦아서 반짝이는 보석으로 만드는 작업이에요.
그래서 강사라 작가님의 원고를 더 빛나게 하기 위해 여러 시도를 했어요.

먼저, 작가님이 추천하신 음악은 QR 코드로 연결해 독자들이 직접 들을 수 있도록 했어요.
비교적 명확한 제목을 가진 영상들은 검색이 쉬우니, PDF 전자책에서 접속이 가능하도록 링크를 추가했고요.
그리고 시마다 어울리는 테마 색상을 정해서 분위기를 살리고, 전체적인 통일성을 유지하면서도 개성을 살릴 수 있도록 디자인을 다듬었어요.
이렇게 책의 형태를 고민하고, 작은 디테일까지 신경 쓰다 보면 가끔은 마치 예술 작품을 완성해가는 기분이 들기도 해요.
어떤 요소를 더하고, 어떤 부분을 살려야 할지 하나하나 고민하는 과정이, 원고를 가공하는 편집자의 손끝에서 새로운 감각을 불어넣는 일이기도 하거든요.
그래서일까요? 편집을 할 때마다 저는 이 일이 단순히 문서를 다듬는 것이 아니라, 원고에 새로운 숨을 불어넣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게 돼요.
글을 쓰는 작가님이 이야기의 본질을 만들어주셨다면, 우리는 그것이 가장 빛날 수 있도록 돕는 사람들이니까요.
책은 단순한 활자의 모음이 아니에요.
내용을 담아내는 그릇이자, 하나의 완성된 작품이죠.
그 안에는 작가님의 손길과 생각이 고스란히 담겨있고, 우리는 그 형태를 더욱 아름답게 만드는 일을 한답니다.

편집을 하다 보면, 어느 순간 책이라는 사물이 새롭게 보이기도 해요.
단순히 종이로 묶인 것이 아니라, 우리가 조합하고 만들어낸 ‘작품’처럼 느껴진다고 할까요?
그때마다, 우리가 이 책을 만들고 있다는 자부심이 커지죠.
책 한 권을 만드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지, 그 과정에서 느껴지는 감각을 오래 간직하고 싶습니다.
그 감각이 매번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가는 원동력이 되어 주거든요.
그렇게 한 권 한 권의 책을 완성할 때마다, 조금 더 깊고 다양해지는 감각들을 고스란히 느끼며 또 다른 책을 향한 길을 걷게 되죠.
그 길 끝에서 더 많은 감동을 작가님들과 독자분들께 전하길 바라며, 이만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