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장의 하루 – 선물과 결별

페스트북은 다른 출판사와 근본적으로 다른 몇 가지가 있습니다.

저희는 작가와 예술가를 돕기 위해 태어났습니다. 저희는 작가와 예술가들이 모인 조직입니다. 그래서 자신을 작가와 예술가로 생각하는 분들과 말할 수 없는 동질감을 나누고 있습니다.

오늘 하루 단면은 그런 페스트북의 일상을 잘 보여준다고 생각해서 기록합니다.

선물

깜짝 선물을 받았습니다. 두 권의 시집을 출간하신 박선희 작가님께서 지인을 통해 선물을 보내오셨네요.

한 권의 책이 나오기까지 평균 20개 이상의 편지를 주고 받습니다. 책에 대한 내용도 있지만 안부와 날씨에 대한 내용도 있지요. 계약 작가님들과는 필요할 경우엔 전화도 주고 받습니다. 책을 출판하고 나서도 그렇지요.

책이 시장에 잘 자리잡고 나면, 마치 뜨거운 우정이 소원해진 것마냥 서로 연락이 뜸해집니다. 어쩔 수 없지요. 작가님은 작가님의 세상으로, 또 저희는 다른 작가님을 위한 여정으로 떠납니다. 한 달에 한 번 인세를 안내하는 형식적인 이메일이 가끔 서로를 기억하는 흔적으로 남습니다.

그리고 때로는 이렇게 감사한 선물로, 편집부는 또 한번 작가님에 대한 반가운 이야기로 활기찹니다. ‘아, 박선희 작가님, 기억나요! 맞아, 맞아…’

미국에서 보내주신 홍삼

결별

정반대로 오늘은 한 의뢰 작가님께 계약 해지를 통보했습니다.

프로 패키지로 정성스레 원고를 읽고 여러 차례 이메일로 의견을 교환했습니다. 너무 소수만 공감할 수 있는 콘셉트보다는, 더 많은 대중에게 관심을 받을 수 있는 콘셉트를 제안드렸고 작가님도 기쁜 마음으로 동의했습니다.

그런데 작가님은 독자보다는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것들을 작품의 표지와 내지 디자인에 넣길 원하셨어요. 여러 번 만류했지만 작가님은 결국 소제목의 글자 크기와 여백의 너비 그리고 폰트의 색상까지 지정해서 저희에게 통보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아…

죄송합니다만 작가님의 기호는 처참했어요. 좋은 책은 결코 작가의 기호를 맞추는 데에서 오지 않습니다. 그건 작가의 자기만족이 되기 쉽습니다. 시중의 개인 출판물이 처참하게 실패하고 어딘가 모자라 보이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슬프게도요). 대문호 뒤에는 늘 훌륭한 조력자와 편집자가 있었지요.

저희는 작가님의 의견을 존중합니다. 합리적인 이유로 이견을 주시면 저희 역시 한 수 배웁니다. 작가님들은 역시 작가님들이시거든요! 하지만 일을 편하게 하기 위해 작가님이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시키는 대로만 하면 훨씬 빠르고 쉬운 게 사실이니까요, 하지만 저희는 그러면 동기부여가 되지 않고 곧 따분해집니다). 저희 역시 작가이고 예술가이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번거롭고 귀찮더라도 저희가 생각하는 “옳은 방향”을 주저하지 않고 말씀드리는 편입니다. 그 방향은 저희 에디터와 편집부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것들이 아니고, 오랜 경험과 데이터로 “독자가, 시장이 좋아하는 방향”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페스트북은 구글의 공식 AGT 프로그램 파트너 기업으로 본사 회의는 물론 수차례 컨설팅을 통해 독자 데이터를 주기적으로 분석하고 이를 인사이트로 보유하고 있습니다)

저는 작가님께 말씀드렸습니다. “페스트북의 프로 패키지 이름을 달고 그런 표지와 내지를 내보낼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서로 합의 하에 결별을, 아니 계약을 종료하게 되었습니다.

“에이 후련하다.” 이런 생각보다는 ‘자신의 고집 때문에 훌륭한 출판물의 기회를 잃은’ 작가님 생각 때문에 마음 한 켠이 씁쓸함을 느낍니다.

그렇지만 저희에게는 또 내일의 작가님이 계시고, 힘을 내서 최선의 창작을 도와야지요. 이것이 고치고 또 고치고, 만들고 또 만드는, 저희 편집부의 일이니까요. 돈을 벌기 위해서 작가가 시키는 대로 편하게 일하기보다는, 귀찮더라도 프로처럼 완성도 있는 출판을 선물하려는 저희 페스트북의 사명이니까요.

편집장 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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