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 우설
27살, 어린 나이에 우설 시인은 미국으로 떠났다. 타향살이에서 위로가 되어준 것은 창작이었다. 그녀는 미국에서 어떻게 창작을 지속해왔을까? 힘든 점은 없었을까? 이야기가 궁금했고 그녀는 흔쾌히 인터뷰에 수락하였다. 시집 <허드슨 강가의 끝과 끝>을 출간한 후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우설 작가를 비대면으로 만났다. 화면 속 너머에 자리한 그녀는 문학을 사랑하는, 누구보다도 순수함이 묻어나는 소녀였다.
페스트북에서 정말 열성적으로 도와주셨습니다. 기대한 것보다 훨씬 꼼꼼해서 감동했어요.
우설 작가
머리는 백발에 가까워 와도
이마에는 주름이 새겨져도..
함박눈이 오는 어느 겨울날..
파아란 가로등 아래로 눈이 나리면
그 눈 속에서
그리운 이름 하나
그리운 얼굴 하나..
포근히 떠올린다..
– ‘그리운 이름 하나’ 중

Q. 안녕하세요, 작가님, 반갑습니다. 자기 소개를 부탁드려도 될까요.
네, 안녕하세요. 저는 뉴욕에 살고 있는 ‘우설’입니다. 시인이자 소설가이기도 합니다. 어릴 때 글 쓰는 것, 그림 그리는 것, 사진 찍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형제가 없이 커서 혼자서 하는 창작 활동이 즐거웠던 것 같아요.
Q. 어린 시절부터 예술적인 기질이 있었군요. 스물일곱, 한참 어린 나이에 미국으로 이민을 가셨습니다. 사연이 있는지요?
결혼을 좀 빨리 했습니다.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결혼을 했어요. 시댁 식구들이 다 미국에 먼저 이민을 가 있는 상태여서 저도 떠나게 되었지요. 뉴욕에 처음 도착했을 때가 생각나네요. 밤에 케네디 공항에 내리는데 하늘에서 내려다보이는 모습이 멋졌어요. 어제 일처럼 기억이 나요.


Q. 어린 나이에 고국을 떠나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32년을 미국에서 지내셨는데요. 무엇이 제일 힘드셨어요.
사실은 엄마가 돌아가신 지 1년이 채 안 되었을 때 미국에 넘어왔습니다. 저희 어머니가 손주를, 그러니까 제 아들을 봐주러 오시다가 눈길에서 넘어지셔서 돌아가셨어요. 그때 심정을 어떻게 말로 다 할 수 있을까요. 저 때문에 엄마가 돌아가신 것 같다는 죄책감이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미국에 왔는데 아는 사람은 한 명도 없고, 엄마 생각이 많이 나고, 한국으로 돌아가고만 싶었어요.
Q. 얼마나 마음이 괴로우셨을까요. 감히 상상할 수도 없습니다. 어려운 시기를 어떻게 이겨내셨어요.
미국에 와서는 너무 바빴어요. 마음은 슬픈데 몸은 힘들었습니다. 아시겠지만 이민 1세대들이 참 힘들게 살았어요. 저녁에 잠깐 잠만 자고 밖에 나가서 일을 했어요. 디른 분들은 그러더라구요. 애들 보고 참으라고. 엄마를 잃고 외로워서 미국에 왔는데 더 외롭기만 하니 어떻게 하지? 싶었어요. 교회도 나가고 일도 했어요. 이런저런 일들로 어느 정도는 공허함이 채워졌지만 여전히 허전했어요. 그때 글을 쓰면서 많이 위로를 받았습니다.
주변에서도 포기하지 말고 작가가 되라고 응원을 많이 해주셨구요.
Q. 힘든 시기에 글을 쓰면서 위로를 받으셨군요.
네 맞습니다. 참 재밌는 게요. 사람들이 제 겉모습만 보면 그저 밝은 사람인 줄 알아요. 그러다가 시를 보면 매치가 안 된다고 해요. 이거 정말 너가 쓴 거 맞냐고. 내용이 너무 절절하다고. 그래서 저는 사람들한테 이야기해요. ‘아픔이 계속 다져지면 저절로 웃음이 나온다고.’ 눈물이 나올 것 같지만 진짜 힘들면 안 그래요.
Q. 글을 쓰면서 아픈 마음을 달래셨군요. 그럼 시를 처음으로 쓰기 시작한 건 미국에 넘어와서인가요?
그건 아니에요. 글은 어릴 때부터 꾸준히 썼어요. 꼼꼼하고 기록하기 좋아하는 성격이었습니다. 어디를 가다가도 눈이 오거나 비가 오면 가방을 바닥에 두고 메모지를 꺼내 떠오르는 감정들을 적었어요. ‘친구가 너무 보고 싶다.’ 이런 말도 쓰고. 감정이 한 번 차오르면 멈추지 않더라구요. 감성적인 분들은 이해하실 거예요.
비가 오면 교복을 입은 채로 빗속을 돌아다니기도 하고. 다락방 같은 곳에 올라가서 책도 읽고 그랬어요. 그래서 시간이 지나 시인으로도 등단을 했습니다. 국문학과를 나오거나 하진 않았지만요.
Q. 평범하게 지내다가 시인으로 등단하신 점이 참 인상 깊습니다. 등단은 어떻게 하셨어요?
시를 너무 잘 쓴다고 주변에서 투고를 권유했어요.
Q. 그렇군요. 시를 내고 싶지만 등단을 하지 않아서 망설이는 분들도 많은데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분들은 시집을 낼 수 있을까요?
물론입니다. 저도 환갑 기념으로 시집을 냈거든요. 등단을 하지 않아도 자기가 시를 모아서 시집을 내면 돼요. 저는 50살부터 꿨던 꿈이에요. 10년 후에 시집을 내자고. 누구나 꿈을 이룰 수 있어요.
특히 나이가 들면 생활이 안정되잖아요. 꿈을 이룰 때인거죠. 살아온 이야기만 써도 소설로 몇 권은 나올 거에요. 이야기가 없는 사람은 없거든요.
Q. 독자들이 많은 용기를 얻을 것 같습니다. 환갑 기념으로 시집을 낸 소감이 어떠세요?
정말 설렜어요. 처음으로 책을 받아볼 때의 그 기분이란 말이지요. 표지, 사진 모두 너무 마음에 들어요. 특히 페스트북에게 감사한 마음입니다.


Q. 어떤 점에서 마음에 드셨어요?
페스트북에서 정말 열성적으로 도와주셨습니다. 기대한 것보다 훨씬 꼼꼼해서 감동했어요. 사실 저는 뉴욕에 있으니까 여기 있는 출판사랑 계약을 해도 되는데요. 미리 몇 백부를 찍어야 하고, 계약 조건도 까다롭고 마음에 안 들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페스트북 광고를 보게 되었어요. ‘알아서 다 해드릴게요’라는 말이 참 신선했습니다. 제 나이쯤 되면 복잡한 건 싫거든요. 많은 부수를 찍지 않아도 되고, 수정도 할 수 있고, 알아서 다 해주는 게 좋았어요. 꼼꼼한 제 성격에도 맞구요.
참, 표지도 아치형으로 너무 마음에 들어요. 몇 개를 제안해 주시면서 이 중 하나를 고르라고 하는 것이 좋았습니다. 표지 사진과 제목도 잘 어울려요. 돌이켜보면 편집부와 소통하는 순간이 제일 즐거웠던 것 같아요. 작가들은 그런 것에 목말라 있거든요.
돌이켜보면 편집부와 소통하는 순간이 제일 즐거웠던 것 같아요. 작가들은 그런 것에 목말라 있거든요.
우설 작가
Q. 책을 낸 후 주변 지인들의 반응이 궁금합니다.
주변 소중한 지인들에게 책을 건네줄 수 있어 너무 기뻤어요. 저는 거창하게 출간기념회 같은 걸 하고 싶지 않았어요. 나의 살아온 길을 알고 함께해 주신 분들깨 제 책을 전하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받아보더니 다들 예쁘다고 해주세요. 사진들도 잘 배치가 되었대요. 어디서 만들었냐고 주변에서 많이 물어보더라구요.
Q. 앞으로의 출간 계획은 어떻게 되시는지요.
제가 38살에 소설가로 등단을 했어요. 그 이후로 20년이 지나면서 속에 쌓인 글들이 많아요. 이걸 풀어내기 시작하면 좋은 글이 나오겠다. 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조만간 소설을 집필 할 계획입니다.
Q. 마지막 질문입니다. 작가님에게 “그리움” 이란 무엇일까요?
저에게 그리움은 진달래에요. 엄마가 진달래를 참 좋아하셨어요. 엄마랑 뒷산에 가면 같이 진달래를 바라보곤 했어요. 아이, 어머니를 생각하니까 또 눈물이 나려고 하네요. 한국 생각하면 엄마가, 엄마를 생각하면 진달래가 떠올라요. 연한 빛깔의 진달래가 여기 미국에는 없거든요.
작가님, 오늘 감사합니다. 작가님의 목소리로 낭독해주신 시 한 편을 들려드리면서 오늘 인터뷰를 마무리하겠습니다.
우설 작가의 시 낭송 영상
우설 시인의 시집 <허드슨 강가의 끝과 끝> 은 교보문고 등 온라인 서점에서 구매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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